[오피니언]
신춘식 교수와 함께 하는 조나단 에드워즈 선교신학 <부흥에서 선교로 대각성 운동이 제시하는 디아스포라 교회의 방향>
크리스천헤럴드2026.07.14
미주 한인 교회에서 ‘부흥’이라는 단어는 특별한 무게를 가진다. 뜨거운 찬양, 눈물의 기도,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는 집회, 이런 장면들이 먼저 떠오른다. 부흥을 갈망하는 마음은 진실하고 귀하다. 그러나 한 가지 질문을 붙들어야 한다. “우리가 바라는 부흥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부흥이 교회 안의 뜨거움으로 끝난다면, 그것은 에드워즈가 말한 참된 부흥과 거리가 있다.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가 주도한 18 세기 대각성 운동(Great Awakening)은 단순한 감정적 흥분이나 종교적 열기가 아니었다. 에드워즈는 참된 부흥을 ‘하나님의 영광이 확장되는 운동’으로 정의했다. 그리고 그 영광의 확장은 반드시 교회 밖, 세계를 향한 선교적 움직임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믿었다. 부흥과 선교는 그에게 동전의 양면이었다. 에드워즈는 부흥의 참된 증거를 다섯 가지로 제시했다. 그의 저작 『성령의 역사를 분별함』(The DisAnguishing Marks of a Work of the Spirit of God)에서 그는 감정의 강렬함이나 외적인 현상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가, 죄를 거슬러 싸우는가, 성경을 사랑하는가, 건전한 교리를 따르는가, 그리고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이 자라는가를 기준으로 삼았다. 이 마지막 기준 이웃을 향한 사랑은 선교적 행동과 직결된다. 참된 부흥은 안으로 불타오르는 동시에 밖을 향해 흘러야 한다. 실제로 대각성 운동은 선교적 열매를 맺었다. 부흥의 불길이 뉴잉글랜드 교회들을 휩쓸고 지나간 후, 교회는 안으로 뜨거워지는 데 그치지 않았다. 데이비드 브레이너드가 인디언 부족을 향해 나아갔고, 에드워즈 자신이 스톡브리지 선교지로 떠났다. 부흥은 사람들을 세상으로 내보내는 에너지가 되었다. 이것이 에드워즈가 말한 부흥의 방향성이다. 안으로 모이는 원심력이 아니라, 밖을 향해 나아가는 구심력이었다. 에드워즈는 또한 부흥을 고립된 사건이 아니라 역사 전체를 흐르는 하나님의 구속 계획으로 보았다. 그의 저작 『구속 사역의 역사』(A History of the Work of RedempAon)에서 그는 창조에서 종말까지의 역사를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선교의 이야기로 해석했다. 부흥은 그 큰 흐름 안에서 일어나는 특별한 역사의 물결이다. 따라서 부흥을 경험한 교회는 반드시 그 물결을 타고 세계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부흥의 감격이 교회 안에서만 소비될 때, 그것은 에드워즈의 신학으로 보면 반쪽짜리 부흥에 불과하다. 에드워즈는 특별히 『기도합주회』(원제: An Humble A*empt, 1747)에서 전 세계 교회가 연합하여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기도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어느 한 교회의 부흥이 전 세계 선교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작은 기도 모임이 세계 선교 운동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이 확신은, 훗날 윌리엄 캐리의 현대 선교 운동에 직접적인 영감을 주었다. 한 지역의 부흥이 전 세계적 선교로 연결되는 이 흐름을 에드워즈는 신학적으로 정교하게 설계했다. 이 관점에서 오늘 미주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를 바라보면 흥미로운 통찰이 열린다. 디아스포라 교회는 구조적으로 이미 경계선 위에 서 있다. 우리는 한국 문화와 미국 문화, 이민자 세대와 현지 세대, 동양적 영성과 서구적 신학 사이에 위치해 있다. 이 경계선은 약점처럼 보이지만, 에드워즈의 선교신학으로 보면 오히려 강력한 선교적 자원이다. 경계선 위에 선 자만이 두 세계를 연결하는 다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디아스포라 교회가 추구해야 할 부흥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에드워즈의 대답은 명확하다. 먼저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깊은 갈망이 회복되어야 한다. 그 갈망이 기도로, 말씀 묵상으로, 삶의 변화로 이어질 때 진정한 부흥의 씨앗이 심겨진다. 그리고 그 씨앗은 반드시 교회 밖을 향해 자라야 한다. 이웃을 향한 섬김, 지역 사회와의 연대, 그리고 세계 선교를 향한 구체적인 헌신으로 이어질 때 부흥은 비로소 완성된다. 미주 한인 교회는 이 점에서 독특한 위치에 있다. 우리 교회는 한인 공동체를 섬기는 동시에, 미국 사회 안의 다양한 문화권과 접촉하고 있다. 스페인어권 이민자들, 아시아계 다른 민족들, 미국 주류 사회의 이웃들이 모든 접촉면이 잠재적 선교 현장이다. 에드워즈가 말한 부흥의 선교적 방향성을 붙든다면, 디아스포라 교회는 단지 한인을 위한 교회가 아니라 열방을 섬기는 선교적 교회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단번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에드워즈 자신도 노샘프턴 교회에서 수년간의 신실한 목회 끝에 대각성의 불길이 타오르는 것을 경험했다. 부흥은 인간이 기획하는 이벤트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이다. 그러나 그 은혜는 준비된 공동체 위에 임한다. 말씀과 기도로 깊어진 교회, 하나님의 영광을 갈망하는 공동체, 세상을 향한 마음이 열린 신자들, 이것이 부흥을 준비하는 교회의 모습이다. 대각성 운동이 일어난 18 세기 뉴잉글랜드와 오늘 미주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의 상황은 다르다. 그러나 에드워즈가 붙든 질문은 동일하다. “이 부흥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만족을 위한 것인가.” 이 질문 앞에 정직하게 서는 것, 그리고 부흥의 방향을 교회 안에서 세계를 향해 돌려놓는 것, 그것이 에드워즈의 선교신학이 오늘 우리에게 요청하는 전략이다. 디아스포라 교회의 부흥 전략은 화려한 프로그램이나 대형 집회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엎드린 소수의 기도에서, 말씀 앞에서 무릎 꿇는 공동체에서, 그리고 이웃을 향해 문을 여는 작은 결단에서 시작된다. 에드워즈의 대각성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작은 시작이 한 시대의 선교 역사를 바꾸었다. 오늘 미주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가 부흥을 꿈꾼다면, 그 꿈의 방향을 분명히 해야 한다. 부흥은 교회의 크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한 것이다. 부흥은 우리를 위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보내기 위한 것이다. 에드워즈가 살았던 시대에 부흥이 선교를 낳았듯, 오늘 우리의 부흥도 반드시 선교로 이어져야 한다. 참된 부흥은 교회를 흔들고, 그 흔들림은 세상을 향한 발걸음이 된다. 대각성 운동이 그것을 증명했다. 그리고 오늘 디아스포라 교회 안에서도 그 증명은 계속될 수 있다. 부흥에서 선교로, 이것이 에드워즈의 신학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강력한 교회 전략이다. 부흥은 교회 안으로 끝나지 않는다. 참된 부흥은 언제나 세상을 향해 문을 연다. 그리고 그 문 너머에서 디아스포라 교회의 선교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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