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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병학 목사의 소통하는 교회 - 소통은 함께 걷는 용기다

작성일 : 2026-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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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신문 기사 한 편을 읽었다. AI가 사무·전문직 영역으로 빠르게 들어오면서, 오히려 배관·전기·건축·항공정비 같은 기술직이 주목받고 커뮤니티 칼리지 관련 과정 수강생이 크게 늘었다는 내용이었다. 

학사와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갖춘 사람이 스타트업을 떠나 건설기술을 배우러 갔다는 대목이 특히 눈에 남았다. “기술이 나를 대체할 수 없는 경력을 쌓고 싶다”는 말이 요즘 시대의 공기를 정확히 붙잡고 있다고 느꼈다.

사람들이 자꾸 “불안하다”고 말하는 이유가 거기 담겨 있다고 보았다. 불안은 “일자리가 줄어들까”에 머물지 않는다. 더 깊은 곳에서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인가”, “나는 여전히 가치 있는 존재인가”라는 질문으로 내려간다. 결국 AI 시대의 불안은 직업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로 번진다. 교회가 이 불안을 외면하면, 신앙은 삶과 분리된 공허한 말이 된다.

AI의 영향이 커질 거라는 전망은 널리 알려져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AI가 전 세계 일자리의 상당 부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하며, 기회와 함께 불평등 심화의 위험도 지적한다. 이런 흐름 앞에서 교회는 단순히 

“세상 돌아가는 얘기”로 치부하고 지나갈 수 없다. 성도가 흔들리는 지점이 곧 목회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나. 요즘 교회가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너무 빨리 답을 말하려는 습관이다. 누군가 “일이 불안하다”고 말하면 곧장 “기도하면 된다”고 응답한다. 물론 기도는 핵심이다. 그러나 그 말이 상대의 현실을 건너뛰는 방식으로 쓰일 때, 위로는 오히려 단절이 된다. 소통하는 교회는 먼저 묻는다. 

“요즘 무엇이 가장 두렵냐?”, “일터에서 무엇이 달라졌냐?” 이런 질문은 상담 기법이 아니라 목회 그 자체다.

신문 기사에서 사람들이 몰리는 기술직 분야에는 공통점이 있다. 현장에서 손으로 만지고, 몸을 움직이며, 예측 불가능한 변수를 즉시 판단해야 한다. 이것은 “육체 노동의 부활”만이 아니다. 관계와 책임과 돌봄과 판단이 여전히 중요하다는 사회적 고백이다. AI는 문장을 만들 수 있으나 회개의 진심을 대신 살지 못하고, 정보를 정리할 수 있으나 관계의 무게를 대신 지지 못한다. 그러므로 “AI가 못 빼앗는 일”은 결국 인간다움의 영역이다.

다만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교회의 태도는 AI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나 배타가 아니어야 한다. 기술 자체를 악으로 단정하거나 변화 자체를 거부하는 방식으로는 다음 세대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교회는 ‘반기술’이 아니라 ‘친인간’의 자리에서, 무엇을 맡기고 무엇을 책임질지 기준을 세우며 묻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여기서 교회의 역할이 선명해진다. 첫째, 교회는 ‘직업’을 신앙의 언어로 번역해야 한다. 주중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주일의 언어는 삶에 붙지 않는다. 교회는 “직업”를 소명으로, “생산성”을 청지기됨으로, “재교육”을 제자훈련의 확장으로 번역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성도는 자기 일터를 하나님 나라의 현장으로 다시 보기 시작한다.

둘째, 교회는 전환의 길목에서 실제적 도움을 제공해야 한다. 

“믿음으로 버텨라”만 말하면 공허해진다. 전환을 준비하는 이들을 위한 소그룹을 만들고, 이력서·면접을 돕고, 같은 분야 선배들이 멘토가 되게 하며, 필요하면 돌봄도 연결해야 한다. 이는 과도한 개입이 아니라 이웃 사랑의 구체화다.

셋째, 교회는 AI 윤리와 정의를 ‘현장 언어’로 말해야 한다. 누가 이익을 가져가고 누가 비용을 치르는가,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존엄이 훼손될 때 무엇을 말하겠는가. 교회는 인간의 존엄을 기준으로 질문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역할을 하려면 교회 내부부터 준비가 필요하다. 프로그램 중심, 행사 중심, 건물 중심으로 움직이는 방식만으로는 성도의 파편화된 삶을 붙잡기 어렵다. 주중 목회를 강화하고, 실직·전환·번아웃 같은 현실을 다룰 돌봄 체계를 갖추며, 세대가 서로의 전환을 돕도록 구조를 재설계해야 한다. 그리고 교회가 AI를 활용한다면 더더욱 투명해야 한다. 무엇을 AI에 맡기고 무엇을 인간의 책임으로 붙들지 기준이 분명해야 신뢰가 무너지지 않는다.

결국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교회는 무엇을 대체 불가능하게 제공하겠느냐’이다. 건물도 콘텐츠도 대체된다. 

그러나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주는 공동체,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붙잡아주는 공동체, 불안 속에서도 “너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다”라고 끝까지 말해주며 그 말을 실제 도움과 연결하는 공동체는 쉽게 대체되지 않는다. 소통은 말이 아니라 “당신의 삶을 함께 지겠다”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소통하는 교회는 기술의 속도를 이기려 하지 않는다. 대신 사람의 속도를 지킨다. 불안한 이들의 손을 잡고, 다시 배울 수 있게 돕고, 존엄을 잃지 않도록 곁을 지키는 것. 그 자리가 바로 AI가 절대로 빼앗을 수 없는 교회의 자리라 믿는다.

  • 김 병 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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