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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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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신춘식 교수와 함께 하는 조나단 에드워즈 선교신학 <왜 이 시대에 조나단 에드워즈인가?> 크리스천헤럴드2026.02.19
    우리는 여전히 부흥을 사모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많은 교회가 부흥을 기도하고, 부흥을 사모하며 기다린다. 그러나 동시에 교회 안팎에서는 분명한 위기의 신호들이 감지된다.이는 부흥을 부정하기 위한 진단이 아니라, 부흥을 더 진지하게 붙들기 위한 질문이다. 오늘의 교회는 과연 무엇을 회복해야 하는가? 그리고 부흥을 말하면서도 혹시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가?미국 사회의 종교 지형 변화는 이미 공신력 있는 연구들을 통해 분명히 관찰되고 있다.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가 2023–2024 년에 실시한 종교 지형 조사(Religious Landscape Study)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약 62%가 자신을 기독교인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동시에 무종교인의 비율도 약 30%에 근접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00 년대 초반과 비교할 때 미국 사회에서 기독교적 정체성이 상당히 약화되었음을 보여 주는 지표이다.특히 15 세에서 29 세 사이의 젊은 세대에서 종교 이탈 현상이 두드러지며, 종교적 가정에서 성장했음에도 성인이 되면서 무종교인으로 전환하는 경향이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퓨리서치는 이러한 흐름을 분석하며, 향후 종교적 부흥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현재로서는 이를 뒷받침할 통계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평가한다.이러한 위기는 미국 교회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한국 교회 역시 유사한 현실에 직면해 있다. 주요 교단 통계와 교계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지난 10 여 년간 한국 교회의 교인 수는 전반적으로 감소 추세를 보여 왔다. 예컨대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측의 경우, 2012 년 약281 만 명이던 교인 수가 2023 년에는 약 230 만 명 수준으로 줄어든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집계 방식과 기준 연도에 따라 수치에는 다소 차이가 있으나, 교세가 장기적인 하락 국면에 들어섰다는 점 자체는 여러 자료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된다.교세 감소와 더불어 한국 교회에 대한 사회적 신뢰 역시 눈에 띄게 약화되고 있다.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지앤컴리서치에 의뢰해 2023 년 실시한 ‘한국교회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 교회를 ‘신뢰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21%에 불과한 반면,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약 74%에 달했다. 교인 수 감소도 심각한 문제이지만, 이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교회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구조적으로 붕괴되고 있다는 현실이다.불투명한 재정 운영, 교회 지도자들의 삶에 대한 문제 제기, 그리고 성장 제일주의에 대한 비판은 오늘의 한국 교회가 안고 있는 깊은 내적 과제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이러한 시대적 현실 앞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한 인물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18 세기 미국의 신학자이자 목회자, 그리고 선교사였던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이다. 에드워즈가 살았던 시대 역시 결코 안정적이지 않았다. 신앙은 형식화되었고,교회는 영적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바로 그 시점에서 에드워즈는 깊은 경건과 치열한 신학적 성찰, 그리고 실제적인 목회와 선교의 헌신을 통해 대각성 운동(The Great Awakening)의 중심 인물로 쓰임 받았다.에드워즈는 강단에서 부흥을 외친 설교자였을 뿐 아니라, 스톡브리지(Stockbridge) 인디언 공동체 한가운데서 복음을 삶으로 살아낸 선교사였다. 그는 교회의 회복을 외형적 성장이나 제도 개혁에서 찾지 않았다. 문제의 뿌리를 하나님 중심성을 상실한 신앙, 다시 말해 정체성의 붕괴에서 찾았다. 에드워즈에게 신앙이란 종교 활동이나 개인적 체험을 넘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존재 방식 그 자체였다.오늘 우리가 에드워즈를 다시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그가 단지 ‘부흥의 상징’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교회의 위기를 사회 구조나 도덕적 타락의 문제로만 보지 않았다. 신앙의 중심이 하나님에게서 인간으로 이동할 때, 교회는 필연적으로 힘을 잃는다고 보았다.이러한 점에서 그의 신학은 오늘날 미국과 한국 교회가 처한 현실은 물론, 그 두 세계 사이에서 살아가는 디아스포라 신앙인의 삶의 자리와도 깊이 맞닿아 있다. 설교자 로이드 존스(Martyn Lloyd-Jones, 1899–1981)는 “조나단 에드워즈보다 오늘날의 기독교 현실과 더 깊이 관련된 인물은 없으며, 이 시대에 이만큼 필요한 인물도 없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 이 말은 오늘 교회의 상황을 고려할 때 결코 과장이 아니다.부흥을 사모하는 우리는 왜 교회가 힘을 잃었는가를 묻게 된다. 왜 신앙은 삶의 중심에서 밀려났는가? ”왜 부흥을 말하지만 실제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가? 에드워즈의 선교신학은 이 질문들에 분명한 방향을 제시한다. 교회의 회복은 새로운 프로그램이나 전략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하나님 앞에서의 회개, 하나님 중심의 삶, 그리고 세상 속으로 보내심 받은 존재라는 선교적 정체성의 회복에서 시작된다.부흥을 사모하는 시대이기에 우리는 더욱 정직하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붙들고 있으며, 동시에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조나단 에드워즈는 오늘의 교회와 미국 한인 디아스포라 신앙인에게 여전히 가장 신뢰할 만한 사유의 기준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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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
    [오피니언] The letter 21 김광근 - 도둑맞은 밤을 지나, 은혜의 아침으로 크리스천헤럴드2026.02.19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한복음 10장 10절세상은 끊임없이 "더 많이 가져야 해, 남들보다 앞서야 해"라고 속삭이며 우리의 평안과 감사를 야금야금 훔쳐 갑니다. 성경은 이것이 바로 우리 영혼을 메마르게 하려는 '도둑'의 교묘한 전략이라고 말씀합니다. 겉보기엔 바쁘게 살아가지만, 세상의 헛된 것을 쥐려 애쓸수록 속사람은 점점 공허해지는 것, 그것이 바로 도둑에게 마음을 빼앗긴 훈적입니다.그러나 영혼의 어두운 밤이 지나면.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 영혼의 문을 열고 찾아오십니다. 주님이 오신 목적은 우리의 것을 빼앗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에게 참된 생명을 '더 풍성히' 주시기 위함입니다. 주님이 약속하신 풍성함은 단순한 물질적 부요함이 아닙니다.비록 내 손에 쥐어진 것이 작아 보여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찬양할 수 있는 내면의 넉넉함이며, 풍랑 위에서도 깊이 잠드셨던 주님의 그 압도적인 평안이 내 심령에 폭포수처럼 흘러넘치는 은혜입니다.오늘 하루 결핍에 머물던 시선을 거두고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내어주신 주님의 넉넉한 사랑을 바라보십시오. 나를 초조하게 만드는 세상의 비교를 단호히 거절하고 오직 선한 목자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길 바랍니다. 세상에 빼앗겼던 평안을 되찾고, 주님이 주시는 차고 넘치는 생명력으로 넉넉히 이기는 복된 하루 하루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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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2
    [오피니언] 황순원의 10가지 감사노트 - 나오미를 기쁨의 대명사로 만드신 하나님께 감사 크리스천헤럴드2026.02.19
    1 오늘도 귀한 주일 허락하셔서 함께 예배하며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2 오늘 주신 말씀은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시 4:7)입니다. 어떤 조건에 따라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기쁨을 두고 가신 주님으로 기뻐할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3 바울은 옥중에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고 권면하셨습니다. 바울이 어떤 비결을 알려 준 것이 아니라 주안에 있기만 하면 기뻐할 수 있음을 강조하셨으니 감사합니다.4 나오미는 기쁨이라는 이름을 갖고 살았지만 오히려 쓴 물 인생이 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나오미의 이름을 회복시켜서 기쁨의 대명사로 만드신 하나님의 결론은 우리의 현실 속에서 새 힘을 주는 원동력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5 룻은 이방여인으로서 믿음의 어머니를 따라 자기의 고향을 버리고 예루살렘으로 온 여인입니다. 보잘것없는 여인을 통해 역사는 바뀌었으니 하나님나라의 역사는 매우 역설적이기에 절망주에도 희망을 가질 수 있어 감사를 드립니다.6 지금은 가장 열악한 조건이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재료 삼아 가장 멋진 스토리를 써내려 가십니다. 성경에 소개된 인물들의 대부분이 그랬습니다. 우리의 현실 속에서도 일을 행하실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를 드립니다.7 하나님은 역경을 이용하여 목적을 이루십니다. 요셉의 감옥을 통해 그의 인격과 통찰력을 훈련시키셨고 모세의 광야를 통해 리더십훈련을 시키는 사명자로 만드신 분이 나를 강한 훈련장으로 밀어 넣으사 사역자로 만들어 주시니 감사합니다.8 해마다 일 년에 가장 큰 행사로 사모데이를 치를 때마다 모든 에너지가 쏟아집니다. 홀로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찬 일이기에 곳곳에서 함께 하시는 분들로 인해 더욱 힘을 얻고 주님의 지도하시는 손길 따라갈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9 난관 앞에서는 엎드리게 하시고 난관을 넘어서는 앞으로 전진하게 하시니 그럴 때마다 주님이 가까이 노사 내 손 잡아 주시니 힘겨워할수록 더 강한 힘을 위로부터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손길을 보내 주시어 감사합니다.10 주님이 이미 내 안에 기쁨을 넣어 주셨으니 이 기쁨은 세상 포도주와 곡식보다 더 낫다고 하시는 말씀 기억하면서 세상의 것으로 기뻐하던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오직 주님이 주신 기쁨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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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The letter 20 김광근 - 기도가 막힌 자리에서 시작되는 노래 크리스천헤럴드2026.01.26
    인생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도무지 기도가 나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간절한 신음조차 내밸기 힘든 침묵의 시간.. 우리는 '나의 신앙이 부족한 건 아닐까' 자책하며 고개를 멸구곤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 자리가 바로 성령님이 가장 뜨겁게 일하시는 현장이라고 말씀합니다."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틀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로마서 8장 26절성령님은 우리의 연약합을 멀리서 지켜만 보시는 분이 아닙니다.우리가 "주님." 하고 이름만 부른 채 눈물 흘릴 때성령님은그 눈물 속에 담긴 말 못 할 아픔을'하늘의 언어'로 통역하여 보좌 앞으로 가져가십니다.우리의 기도가 멈춘 것 같은 절망의 순간에도,우리 안의 성령님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우리를 붙드시고 끝내 살려내십니다사랑하는 여러분,혹시 지금 기도의 문이 닫힌 것 같아 답답해하고 계십니까? 기도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저 주님의 품에 조용히 기대어 보십시오세련된 문장도, 긴 미사여구도 필요 없습니다.여러분의 깊은 한숨을 기도로 바꾸어 드리는 성령님의 손길을 신뢰하십시오.내가 침묵할 때도 나를 위해 일하시는 그분의 기도가 있기에,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그신실하신 성령님의 도우심을 의지하며오늘 하루도 담대하게 걸어가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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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
    [오피니언] 김병학 목사의 소통하는 교회 - 소통은 함께 걷는 용기다 크리스천헤럴드2026.01.26
    며칠 전 신문 기사 한 편을 읽었다. AI가 사무·전문직 영역으로 빠르게 들어오면서, 오히려 배관·전기·건축·항공정비 같은 기술직이 주목받고 커뮤니티 칼리지 관련 과정 수강생이 크게 늘었다는 내용이었다. 학사와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갖춘 사람이 스타트업을 떠나 건설기술을 배우러 갔다는 대목이 특히 눈에 남았다. “기술이 나를 대체할 수 없는 경력을 쌓고 싶다”는 말이 요즘 시대의 공기를 정확히 붙잡고 있다고 느꼈다.사람들이 자꾸 “불안하다”고 말하는 이유가 거기 담겨 있다고 보았다. 불안은 “일자리가 줄어들까”에 머물지 않는다. 더 깊은 곳에서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인가”, “나는 여전히 가치 있는 존재인가”라는 질문으로 내려간다. 결국 AI 시대의 불안은 직업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로 번진다. 교회가 이 불안을 외면하면, 신앙은 삶과 분리된 공허한 말이 된다.AI의 영향이 커질 거라는 전망은 널리 알려져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AI가 전 세계 일자리의 상당 부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하며, 기회와 함께 불평등 심화의 위험도 지적한다. 이런 흐름 앞에서 교회는 단순히 “세상 돌아가는 얘기”로 치부하고 지나갈 수 없다. 성도가 흔들리는 지점이 곧 목회의 자리이기 때문이다.그렇다면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나. 요즘 교회가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너무 빨리 답을 말하려는 습관이다. 누군가 “일이 불안하다”고 말하면 곧장 “기도하면 된다”고 응답한다. 물론 기도는 핵심이다. 그러나 그 말이 상대의 현실을 건너뛰는 방식으로 쓰일 때, 위로는 오히려 단절이 된다. 소통하는 교회는 먼저 묻는다. “요즘 무엇이 가장 두렵냐?”, “일터에서 무엇이 달라졌냐?” 이런 질문은 상담 기법이 아니라 목회 그 자체다.신문 기사에서 사람들이 몰리는 기술직 분야에는 공통점이 있다. 현장에서 손으로 만지고, 몸을 움직이며, 예측 불가능한 변수를 즉시 판단해야 한다. 이것은 “육체 노동의 부활”만이 아니다. 관계와 책임과 돌봄과 판단이 여전히 중요하다는 사회적 고백이다. AI는 문장을 만들 수 있으나 회개의 진심을 대신 살지 못하고, 정보를 정리할 수 있으나 관계의 무게를 대신 지지 못한다. 그러므로 “AI가 못 빼앗는 일”은 결국 인간다움의 영역이다.다만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교회의 태도는 AI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나 배타가 아니어야 한다. 기술 자체를 악으로 단정하거나 변화 자체를 거부하는 방식으로는 다음 세대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교회는 ‘반기술’이 아니라 ‘친인간’의 자리에서, 무엇을 맡기고 무엇을 책임질지 기준을 세우며 묻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여기서 교회의 역할이 선명해진다. 첫째, 교회는 ‘직업’을 신앙의 언어로 번역해야 한다. 주중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주일의 언어는 삶에 붙지 않는다. 교회는 “직업”를 소명으로, “생산성”을 청지기됨으로, “재교육”을 제자훈련의 확장으로 번역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성도는 자기 일터를 하나님 나라의 현장으로 다시 보기 시작한다.둘째, 교회는 전환의 길목에서 실제적 도움을 제공해야 한다. “믿음으로 버텨라”만 말하면 공허해진다. 전환을 준비하는 이들을 위한 소그룹을 만들고, 이력서·면접을 돕고, 같은 분야 선배들이 멘토가 되게 하며, 필요하면 돌봄도 연결해야 한다. 이는 과도한 개입이 아니라 이웃 사랑의 구체화다.셋째, 교회는 AI 윤리와 정의를 ‘현장 언어’로 말해야 한다. 누가 이익을 가져가고 누가 비용을 치르는가,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존엄이 훼손될 때 무엇을 말하겠는가. 교회는 인간의 존엄을 기준으로 질문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하지만 이런 역할을 하려면 교회 내부부터 준비가 필요하다. 프로그램 중심, 행사 중심, 건물 중심으로 움직이는 방식만으로는 성도의 파편화된 삶을 붙잡기 어렵다. 주중 목회를 강화하고, 실직·전환·번아웃 같은 현실을 다룰 돌봄 체계를 갖추며, 세대가 서로의 전환을 돕도록 구조를 재설계해야 한다. 그리고 교회가 AI를 활용한다면 더더욱 투명해야 한다. 무엇을 AI에 맡기고 무엇을 인간의 책임으로 붙들지 기준이 분명해야 신뢰가 무너지지 않는다.결국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교회는 무엇을 대체 불가능하게 제공하겠느냐’이다. 건물도 콘텐츠도 대체된다. 그러나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주는 공동체,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붙잡아주는 공동체, 불안 속에서도 “너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다”라고 끝까지 말해주며 그 말을 실제 도움과 연결하는 공동체는 쉽게 대체되지 않는다. 소통은 말이 아니라 “당신의 삶을 함께 지겠다”는 태도에서 시작된다.그래서 소통하는 교회는 기술의 속도를 이기려 하지 않는다. 대신 사람의 속도를 지킨다. 불안한 이들의 손을 잡고, 다시 배울 수 있게 돕고, 존엄을 잃지 않도록 곁을 지키는 것. 그 자리가 바로 AI가 절대로 빼앗을 수 없는 교회의 자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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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9
    [오피니언] 조영석 목사의 생각하며 기도하며 - 데이터 크리스천헤럴드2026.01.26
    2025에 가장 화제가 된 사건 중 하나를 꼽는다면 AI 일 것이다. 사람을 대체할 만큼 진화된 인공지능은 인간에게 놀라움과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우리 곁에 가까이 왔고 인간의 삶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이전보다 빠르고 정확한 검색, 논리적 대화능력, 자율주행과 로봇 등, 일상에서 유용하게 쓰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일들도 인공지능이 대신하고 있다. 많은 일자리가 이미 AI 에게 빼앗겼고 인간의 생계를 위협하는 수준까지 왔다. 인공지능이 이렇게 빨리 진화한데는 데이터의 힘이 크다. 그래서 AI 와 함께 등장하는 단어가 데이터이다. 인공지능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핵심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데이터이다. AI 가 학습을 하기 위해서는 데이터가 필요하다. 데이터가 많을수록 학습할 기회가 많아지고 그 데이터를 통해 배우고 시뮬레이션으로 경험하며 더 나은 판단을 할 수 있다. 아무리 똑똑하고 인간보다 백만 배 빠른 프로세싱 능력이 있다해도 그 능력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데이터가 있어야 학습하고 연습해서 더 정교하고 정확한 결정을 할 수 있다. 인공지능에게 데이터는 정보이고 경험이다. 사람이 경험을 통해 배우듯이 인공지능은 데이터와 가상현실세계에서 경험하며 배우고, 계속해서 생성되는 데이터를 통해서 끝임 없이 발전한다. 대기업들이 천문학적 돈을 써가며 AI 데이터센터를 짓는 이유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저장하고 인공지능을 학습하기 위해서이다. 데이터센터 안에는 많은 정보를 저장하고 있다. 성공한 데이터만 아니라 실패한 데이터, 예외적인 상황의 데이터 등, 모든 데이터를 학습하기 위해 수집한다. 때론 실패한 데이터가 더 중요하다. 이유를 분석해서 실수를 줄이고 성공의 확률을 높인다. 경험을 통해 학습하는 원리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더 나은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 어떤 판단을 할 때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 실패가 두려워서 도전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경험을 쌓을 수 없다. 경험을 해야만 배울 것들이 있는데 그 기회를 놓치게 된다. 좋은 경험 나쁜 경험 실패한 경험 좌절된 경험, 모두 다 돌아보면 필요했던 경험이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경험이다. 이 모든 경험은 곧 우리의 데이터이다. 내가 판단하고 결정을 하는데 도움이 된 데이터들이다. 그러나 아무런 경험이 없다면 배운 것도 없는 것이다. 가장 쓸모없는 데이터는 바로 노 데이터이다. 무언가를 배우고 학습할 기회조차 없다. 그래서 도전이 겁이 나고 실패가 두렵고 손해를 볼 것 같아도 해보아야 한다. 아무런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건질 게 없다. 차라리 실패를 해서 그 경험으로 한가지 라도 배우는 게 낫다. 실패도 성공만큼 중요한 경험이다.인공지능 개발에 선두를 달리고 있는 기업 중 하나인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 엑스 회사가 그런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 회사가 선택한 획기적인 도전은 무한한 성공을 향한 실패의 기회이다. 한 예로 스페이스 엑스 로켓이 하늘로 솟아오르다가 폭발을 했는데 관제탑에서 발사 팀 수십 명이 마치 성공을 한 듯 환호를 지르며 서로 얼싸안고 기뻐한다. 언뜻 보면 이해되지 않는 모습의 이유는 그들은 이룬 성과에 집중하고 가치를 매겼기 때문이다. 이전 발사보다 로켓이 더 높이 멀리 날았다면 성공을 향한 진전이 있었다는 것이다. Starship 프로그램 자체가 실패를 통해 학습하는 전략으로 설계되었고 이는 성공할 때까지 시도할 수 있는 사실상 무제한의 도전 기회가 보장되었다. 무한한 실패를 허용하는 이유는 바로 데이터를 얻기 위함이다. 데이터를 통해서 성공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실패는 성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도전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실패해도 얻는 것이 있다. 하나님도 우리에게 일생동안 기회를 주시고 경험을 하게 하시는 이유도 같다. 주신 기회를 통해 최대한 많은 경험하고, 성숙해지고, 인생을 가치 있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아무런 시도조차 하지 않는 인생은 아무것도 배운 게 없는 쓸모 없는 인생이다. 포도원의 비유를 보면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은 한 달란트를 받은 일꾼을 나무라시는 이유도 그 태도 때문일 것이다.데이터를 저장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지은 최첨단의 데이터센터일지라도 그 속에 데이터가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우리도 일생동안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공간을 가졌다. 삶의 창고가 비어 있고 소중한 데이터가 쌓여 있지 않다면 인생을 헛 산 것이다. 데이터가 없는 데이터센터처럼, 껍데기만 있는 인생인 것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를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된다. 소중한 기회를 얻은 나 자신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야 하고, 나와 같이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야 하고, 나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신 예수님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야 한다. 더 나아가 이 경험들은 하나님을 더 알게 한다. 위기 때 지켜 주신 하나님. 인생의 밑바닥에서 만난 위로의 하나님, 환란에서 건져내 주신 하나님, 이 모든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되고 그 지식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깊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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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선교칼럼> 정 용 구 선교사 "교회를 떠난 게 아닌 찬양 속으로 들어온 요즘 청년들" 크리스천헤럴드2026.01.26
    최근 유튜브(YouTube), 틱톡(TikTok), 인스타그램(Instagram) 등 다양한 SNS 플랫폼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하나 있다. 바로 ‘찬양’ 관련 영상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대형 집회에서 울려 퍼지는 찬양부터, 이름이 알려진 찬양팀의 무대, 그리고 특별한 기획 없이 평범한 공간에서 드려지는 찬양까지 그 형태도 매우 다양하다.혼자서 조용히 찬양을 부르는 영상이 있는가 하면, 수만 명이 함께 목소리를 높이는 예배의 장면도 있다. 피아노나 기타, 드럼 하나로 시작된 찬양도 있고, 특정 국가에 국한되지 않고 각 대륙의 다양한 언어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대형 교회와 작은 교회의 구분 없이 전국 곳곳에서 수많은 찬양 영상들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이 모든 현상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를 꼽는다면, 주저 없이 이렇게 말하고 싶다.“젊은이들이 찬양하고 있다.” 화려한 무대나 정교한 연출이 없어도, 평범한 청년들이 모여 찬양이면 찬양, 워십댄스면 워십댄스를 진심으로 즐기며 드리는 모습이 영상 속에 가득하다. 오랫동안 찬양 사역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 찬양 사역자들과 교제해 왔기에, 이 영상들이 전문 사역자의 것인지, 아니면 평범한 교회 청년들의 찬양인지도 자연스럽게 구분된다. 특히 중·고생들의 찬양 영상은 더욱 깊은 감동을 준다. 교복을 입은 채, 온 힘을 다해 찬양을 드리는 그 모습은 우리가 그동안 쉽게 보지 못했던 장면이자, 다음세대 신앙의 또 다른 얼굴이다.미국의 통계이긴 하지만, 최근 기독교 음악(Christian/Gospel) 장르의 스트리밍 성장률이 다른 주류 음악 장르에 비해 오히려 높은 증가세를 보였다는 보고도 있다. 이는 젊은 세대가 기독교 신앙 음악을 적극적으로 소비하고 있다는 분명한 신호다. 찬양은 더 이상 교회 안 예배 시간에만 머무는 음악이 아니라, ‘나의 이야기와 영적 체험을 담아내는 음악’, 즉 자기 정체성과 신앙 고백이 결합된 표현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젊은 세대는 팟캐스트, 틱톡, 스트리밍 플레이리스트를 통해 찬양을 듣고 공유한다. 교회 밖에서 소비된 찬양이 다시 교회공동체 안으로 흘러 들어오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통적인 교회 안에서의 예배의 틀과 다르게, 이들은 삶 속에서 듣는 워십, 워십 콘서트, 온라인 찬양 라이브, 유튜브와 SNS 등 다양한 공간에서 찬양을 경험해 왔다. 특히 찬양 가사 속에 담긴 솔직한 신앙 고백에 깊이 공감하며, 그 경험을 빠르게 확산시키고 있다.이제 찬양은 ‘듣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참여하는 예배’가 되었고, 주일 예배 시간뿐 아니라 출퇴근길, 운동 시간, 공부하는 순간에도 찬양은 일상의 배경음악이자 신앙의 호흡으로 자리 잡고 있다.다음세대 선교를 이야기할 때, 선배 선교사들은 자신들이 걸어온 선교 유업을 다음 세대에게 잘 넘겨주고 싶어 한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미래세대의 청년들은 이미 ‘종목 자체가 바뀐 경기’를 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종목이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이전의 룰과 경기 방식만을 주장하며 고집한다면, 청년들과의 진정한 대화는 이루어질 수 없다.이제는 종목이 바뀐 경기장 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분명한 선교의 목적을 향해 새로운 방식으로 달려가는 청년들을 이해하고, 존중하고, 격려하며 응원해야 할 때다. 오랫동안 “청년들이 교회를 떠난다”는 이야기로 낙담했던 시간을 지나, 지금 우리는 새로운 시대 속에서 청년들이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다시 일어서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고 있다.이제 이들이 만들어 갈 선교의 새로운 달음질이 기대된다. 기존의 언어로 이들을 설명하려 하기보다, 지금 그들이 가장 기쁘게 참여하고 있는 ‘찬양’과 ‘워십 댄스’를 통해 하나님의 선교가 어떻게 이뤄질 수 있을지를 청년들에게 묻고, 그들이 스스로 고민하고 답하도록 돕는 시간이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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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지상설교> 박헌성 목사 "먼저 문제를 해결하라" (마가복음 9:23-29) 크리스천헤럴드2026.01.26
    세상에는 참 귀한 게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 번 잃어버리면은 영원히 찾을 수 없는 게 있습니다. 그것이 세월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이 있을 동안에 잘 살아야 합니다.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다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문제가 다 있습니다. 성공할 때도 있지만, 실패할 때도 있고, 건강할 때도 있지만 병들어서 힘들 때도 있습니다. 교회 생활도 은혜 받을 때도 있지만 시험 들 때도 있습니다. 인생은 마치 시소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성공할 때는 고난을 생각하고 겸손해야 됩니다. 인생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솔로몬 왕은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공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고 했습니다. 문제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그 문제를 우리가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지극히 작은 문제인데도 그 문제 때문에 힘들어서 넘어지는 사람, 낙심하고 좌절하는 사람이 있음.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힘든 문제지만 그것을 아주 쉽게 이겨서 승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내 힘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어찌할 수 없는 큰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실망하고 좌절하기보다 오히려 그것 때문에 내가 더 큰 은혜를 받아야 되고 더 큰 축복을 받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골프공을 보면은 홈이 파여 있습니다. 원래 골프공은 표면이 매끄러웠다 그래요. 매끄러우면 멀리 날아갈 줄 알았는데 이 홈이 파져 있어야지 멀리 가더라는 거예요.  옴폭 파인 걸 dimple이라고 하는데 즉 보조개죠. 그 골프공 하나에 대략 400개의 dimple이 있답니다. 그런데 이 보조개는 항상 웃어야 되잖아요. 사람들이 클럽으로 쳐대면 상처가 많이 나죠. 그런데 그 상처가 가 있어도 계속 웃고 있는 게 골프공인 거지. 웃고 있음으로 말미암아서 이게 공이 멀리 가는 거예요. 상처가 인생에서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홈이 파져 있으므로 더 멀리 날아갈 수 있고 상처가 있으므로 더 성숙된 인간이 될 수 있고 더 좋은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인생은 고난을 받을 때에 충격을 받을 때에 한없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고난의 때를 우리는 축복의 기회로 만들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쓰리고 아픔의 때를 기쁨과 감사의 모습으로 바꾸어야 되고 시련의 걸림돌을 축복의 디딤돌로 만들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주어진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크고 작은 여러 가지 문제들을 만나게 됩니다.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참으로 어려운 일들을 만날 때가 있지요.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첫째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누구를 만나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첫째는 부모 잘 만나야하고 둘째는 스승도 잘 만나야 되며 세번쨰는 배우자와의 만남이 중요합니다. 성도는 목회자를 잘 만나야 됩니다. 성도에게 귀한 복입니다. 그런데 이런 만남 중에는 선한 사마니아인처럼 좋은 만남도 있고 복된 만남도 있지만 그런가 하면 때로는 원치 않는 불행한 만남들도 있습니다. 말씀속의 병든 아이의 아버지는 원래 예수님 만나려 왔지만 대신 아홉 제자를 만났습니다. 그 제자들은 그의 문제 해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 만날 때에 내 인생의 문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만날 때 기적을 맛볼 수가 있습니다. 성도는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을 만나야 변화받을 수 있고 주님 만나야 성령 충만할 수 있고 주님 만나야 내가 가지고 있는 인생의 문제 해결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는 주님을 만나면 다 해결되는 것입니다.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 인생의 최고의 축복이고 영광이라고 했음. 그렇습니다. 우리들도 예수님 만나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 만날 때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예수님 만날 때 놀라운 축복을 받을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 만날 때 죄인이 용서 안 받고 새 사람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 만났을 때에 이 가난인 한 사람, 부유한 사람 될 수 있음 예수님 만났을 때 병든 자, 치료받고 고침받아 건강한 사람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 만날 때에 마음의 소원 기도의 제목 응답될 줄로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어떤 사람이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만 하면 그의 신비한 능력으로 영광과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예수님 만나면 시몬이 베드로가 됩니다. 예수님 만나면 사울이 바울됩니다. 예수님 만나면 야곱이 이스라엘이 됩니다. 예수님 만나면 아브라함이 아브라함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만나면 눈먼 소경이 눈을 뜨게 되는 것이고. 예수님 만나면 앉은뱅이가 일어나서 걷게 되는 것이고.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매너리즘에 빠져서 그냥 형식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냐? 신론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하나님이 누구시냐? 그 하나님을 잘 믿어야 된다는 분명하게 아멘으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따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의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확실하게 믿으라는 것입니다.신앙은 단순해야 되요. 복잡하면 안 돼요. 우리가 왜 우리의 생활에 기적이 안 일어나느냐. 왜 우리의 생활에 능력이 안 일어나느냐. 믿음이 능력이 없어서 그런 거예요. 여러분 우리 후손들에게도 잘 가르켜야 되잖아요.잘 믿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무궁무진합니다. 신앙은 양보하면 안 되는 거예요. 생명 걸고 믿어야 되는 거예요. 믿음 생활에는 프로가 돼야 돼요.두 소경이 예수님께 나와서 보기를 간청했습니다. 그때 찾아온 소경에게 내가 너희에게 능히 일을 하리라고 너희가 믿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에 소경들이 주여 우리가 믿나이다. 그 말을 듣고 예수님께서 가라사대 너의 믿음대로 될지니라. 소경이 눈 떴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력이 나타나는 거지요. 십자가는 더하기 표입니다. 내 인생에 예수 그리소가 더해지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거예요.마지막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됩니다. 여기 나온 아홉 제자들이 더러운 귀신에 쫒지 못했습니다. 그들도 외쳤겠지요. 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다 배웠어요. 보았어요. 자기들도 했습니다. 어제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안 되는 거예요. 오늘 나사렛 예수께서 명하노니 더러운 귀신아 나가라. 그래도 안 나가는 거예요. 그때 그래서 조용히 예수님께 묻는 거예요.예수님 왜 우리는 더러운 귀신을 능히 내쫓지 못합니까? 그럴 때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기도 외에는 이런 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였어요. 기도 외에는 다른 방법 없다, 이 말이죠. 기도해야 된다. 이 말이에요..주님께서는 우리들이 눈물 흘릴때 궁휼히 여겨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고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돼요. 문제 있으신 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사람들 찾아가야 아무 소용없어요. 무시만 당해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거예요. 기도할 때 주님이 음성 들려줘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권세 가진 자들인거예요.  밖에서 보면은 믿는 사람 안 믿는 사람 다 비슷하게 보일지 모르지만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면 역사가 일어난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믿는다고 하면서 산 밑에 있는 아홉 제자들처럼 무능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귀신 쫓는 권세 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쫓지 못하는 것은 믿음이 없고 지금도 우리가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기도의 응답은 구체적이고 사실적이고 기도의 응답은 허상이나 환상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삶에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징조요. 증거라 이 말이지. 그렇습니다. 문제를 만날 때 우리는 기도해야 됩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실 줄로 믿습니다.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복주십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어떤 문제도 해결하게 하고 주님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거예요.  기도는 땅에 떨어지는 게 없죠. 믿음의 확신 가지고 해야 됩니다. 무엇보다 기도의 맛을 아는 사람은 결국 기도하게 되죠. 응답과 축복은 기도하는 사람에게로 돌아갑니다. 기도는 고난을 영광으로 바꾸는 것이고. 기도는 사람을 바꾸고 기도는 환경을 바꾸고 기도는 하늘 문을 열게 하고 기도는 내 인생을 바꾸고 기도의 능력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을 축원합니다. 새해에는 내 인생의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마음껏 받아 누리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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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황순원의 10가지 감사노트 - 1월에 드리는 감사 기도 크리스천헤럴드2026.01.26
    1 오늘이라는 하루를 선물로 받은 귀한 시간의 첫 시간을 주님과 독대하고 주의 도움을 청하는 기도와 함께 주님의 마음을 알고 싶은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2 신앙의 성숙은 우리의 소원대로 빠른 시간 안에 되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빠름은 오히려 결과만 붙잡게 되는 위험이 있기에 하나님은 시간을 조절하십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깊은 마음인 줄 알고 감사를 드립니다.3 문제가 눈앞에 닥칠 때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나 문제를 피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문제 앞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싶어 하시니 이것을 알 때마다 마음이 조금씩 느긋해질 수 있어 감사를 드립니다.4 나에게 주신 비전이 성취되기는커녕 오히려 불가능한 현실이 닥쳐올 땐 벼랑 끝으로 내몰리곤 합니다. 그때가 바로 하나님과 가장 가까워지는 때임을 뒤늦게 알게 되어 감사합니다.5 때로는 수많은 시간들을 기다릴 때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 같아 무의미함을 느끼곤 하지만 그때에도 하나님은 나의 욕망을 무너뜨리고 그 무너짐 속에서 오히려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하시니 하나님은 이런 분이심을 자신 있게 소개하면서 감사를 드립니다.6 기다림이 아무리 오래가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 곧 성장의 표가 되니 겉으로는 특별히 보이는 것은 없지만 내면의 힘은 탄탄해지게 하시는 주님의 손길 앞에 감사의 고백을 드립니다.7 겸손은 내가 초라하고 연약하다고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나는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인정하는 자세입니다. 하나님은 연약함이나 병을 정말 고쳐 주시지 않고 약함 속에서 버티게 하심으로 성숙하게 하시는 은혜에 감사합니다.8 원치 않는 실수로 마음이 아프고 낙심이 될 때도 실패를 통해 통증 속에서도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게 해 주셔서 성장하게 하십니다. 실패가 겸손으로 옮겨지는 순간 사람을 쉽게 판단하지 않으며 주님의 도우심을 더 분명히 보게 되는 유익이 있으니 이 또한 복중에 가장 큰 복이라 생각하고 감사를 드립니다.9 하나님은 결과보다 동기를 더 중요시합니다. 동기를 보실 때마다 우리의 성장을 확인하십니다. 봉사와 헌신 속에서도 인정을 요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동기를 점검하며 사역이나 삶의 중심이 하나님이 보실 때 어디에 있는가를 먼저 찾기로 다짐하며 감사를 드립니다.10 우리를 성숙시켜 나가시는 하나님! 내 욕망과 비전이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게 하시고 동기를 점검하여 순수함을 지켜 나가도록 성령의 조명이 항상 내게서 떠나지 않게 하여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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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여주봉 칼럼 - 성도들의 새해 소망 크리스천헤럴드2026.01.11
    2025년을 지나며 새해를 맞이했다. 새해에는 우리 주님의 생명의 빛이 우리 모두에게, 더 나아가 모든 세상에 더 강하게 비춰지기를 소망하며, 모든 교회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회복의 은혜가 풍성하게 부어지기를 기대하는 마음을 전하고자 한다.이 땅의 교회와 성도들이 세상을 향한 선교적 소명을 회복하기를 바란다. 예수님의 부활 이후 하나님이 일하시는 주된 통로는 바로 교회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분의 교회를 소중히 여기신다. 하지만 이 시대의 교회는 점점 침체되고 있고, 교회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또한 달갑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왜 그럴까? 초대교회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초대교회의 삶은 그 당시 로마 시대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이었다. 그들은 사회에서 외면 받는 자들을 돌보았고, 전염병이 창궐하여 의사들조차 도망가는 난리통에도 환자들을 돌봤다. 또한 성적 타락이 극심한 그 시대에 정결한 삶을 추구했고, 도움을 청하는 이웃들의 필요를 채워주며 사랑하는 삶을 살았다. 그렇게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선교적 삶을 살았고, 그 엄청난 핍박 속에서도 교회에 믿는 자들의 수가 더해졌다.지금 교회와 성도들에게 많이 가려진 것 중 하나는, 하나님께서 모든 교회에 주신 선교적 소명이다. 초대교회가 그랬듯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배운 대로 살고, 또 살면서 가르쳐야 하는데 과연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는가? 말씀을 올바로 배우지 않으면 말씀대로 살 수 없고,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교회의 소명과 역할을 감당할 수가 없다.이 시대의 모든 교회가 초대교회로 돌아가기를 소망한다. 즉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당신의 교회를 세우시고 온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강력하게 이뤄가시는 새 창조의 역사에 온 삶으로 동참하는, 선교적 소명을 회복하고 그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우리가 하는 일의 소명을 회복하기를 바란다. 우리 하나님은 일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모든 세상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계속해서 돌보시며 지금도 그분의 뜻을 이루시고자 여전히 일하고 계신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할 수 있는 축복을 주셨고, 우리의 일을 통해 온 세상에 그분의 사랑을 공급하신다. 우리의 일은 단순히 밥벌이의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명이자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공급의 통로다. 그렇기에, 교회와 성도가 선교적 소명을 회복하는 것은, 우리의 일의 소명이 회복되는 것과 반드시 연결된다.이 시대에 적지 않은 성도들조차 일에 대해 오해하는 것 같다. 전도나 봉사 등 교회에서 하는 일은 ‘주의 일’이라며 거룩하게 여기지만, 우리가 우리의 일터에서 하는 일은 세속적이고 저급하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런 이분법적인 사고가 이 시대에 팽배하지만, 성경은 전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다. 골로새서 3장에서는, 노예들이 주인을 위해 하는 일을 ‘주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일은 하나님을 섬기는 도구이자 이웃을 사랑하는 핵심적인 수단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일은 고귀한 소명이며, 우리가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주님께 받은 일의 소명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탁월하게 일하며 하나님과 이웃을 섬겨야 한다. 새해에는 우리에게 주신 일의 소명이 그렇게 올바르게 회복되기를 소망한다.십자가 복음으로 교회뿐 아니라 사회 또한 회복되기를 바란다. 우리나라 성도들의 경우 윤리적인 죄(간음, 거짓말, 살인, 도둑질 등)는 심각하게 여기지만 관계적인 죄(상대에 대한 후욕, 판단, 비방이나 상대를 미워하고 용서하지 않거나 상대에게 마음을 닫고 좋지 않은 마음을 품는 것 등)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관계적인 죄도 윤리적인 죄 못지않게 심각한 죄들이다. 관계적인 죄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교회 공동체에는 진정한 연합이 가능하지 않다. 말로는 연합을 외칠지 몰라도, 속으로는 이기적인 욕심대로 분열된 상태에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역과 세대와 정치적 성향을 따라 갈등과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나와 의견을 달리하는 상대를 적대시한다. 특히 정치가 우상이 돼 거기에 자기 인생의 전부를 거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교회와 성도들이 거기에 동의하고 분열시키는 일에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다.지금은 참으로 어려운 시대인 것이 분명하지만, 주님은 이때에도 당신의 교회와 열방을 진정으로 회복하기 원하신다. 그 회복의 동력은 오직 십자가의 복음뿐이며, 그 복음의 포괄적 성격을 이해하고 살아가는 교회가 그 일을 감당해야 한다. 온갖 차별이 가득했던 로마 시대에 ‘반(反)문화 대안(代案)사회’로서 세워진 초대교회를 통해 그 시대가 바뀌었던 것처럼, 이 땅의 교회와 성도들이 십자가의 길을 따라 우리의 이웃들에게 그리고 우리의 일터를 비롯한 사회의 모든 분야를 변혁하고 구속해 나가기를 소망한다.“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사6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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