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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여주봉 칼럼 - 교회의 선교적 정체성과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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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창조의 역사가 구현되는 그 아름다움에 이끌려 하나님꼐 돌아오게 하는 공동체

선교적 교회의 핵심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의 구속은 포괄적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속은 인간의 영혼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각 개인의 모든 영역, 인간 사회와 역사의 모든 영역, 더 나아가 창조세계의 모든 영역을 포함한다.
골로새서 1장 15~23에서 바울이 선포하듯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만물을 하나님과 화해시키시는 이 구속은 우주적이다. 예수의 부활로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새 창조의 역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온 창조세계의 모든 영역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선교도 이 구속의 폭만큼 넓어야 하며, 문화명령과 대위임령의 통합이 필요하다.
이 거대한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존재가 바로 교회다. 하나님은 인간의 타락 이후 모든 창조세계를 구속하시기로 결정하시고,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그 일을 시작하셨다. 아브라함의 자손 이스라엘 백성은 교회로 이어졌고,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온 세상에 하나님의 구속을 나타내 보이시고 전하기를 원하신다. 교회는 단순히 구원받은 개인들의 모임이 아니라, 하나님의 새 창조를 이뤄가시는 역사의 동역자다.
그렇다면 교회가 이 사명을 감당하려면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그것은 먼저 하나님이 의도하신 교회가 '되는 것'이다. 교회의 사역(doing)은 교회의 삶(being)에서 나온다. 교회가 무엇을 하느냐 하는 것은 교회가 무엇이냐 하는 데서 나온다.
마이클 고힌 박사가 말하듯이, "'선교적'이란 교회의 구체적인 활동이 아니라, 교회가 문화적 상황 가운데 하나님의 이야기 속에 주어진 역할을 감당하고,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모습으로서 교회의 본질과 정체성을 서술하는 것이다"('열방에 빛을', 42-43쪽).
하나님이 의도하신 교회의 모습을 성경은 '산 위의 도시'로 묘사한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마 5:14)라고 하셨다. 교회는 세상 한가운데서 하나님의 구속이 만들어 내는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매력적인 대안 공동체다.
정의와 공의, 사랑과 긍휼, 화해와 평화가 살아 숨 쉬는 공동체. 세상 사람들이 바라볼 때, 하나님의 새 창조의 역사가 구현되는 모습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이끌려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공동체. 이것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불렀을 때부터 의도하신 하나님 백성의 모습이고, 오늘날 교회에게 주어진 모습이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교회가 하나님이 의도하신 그 모습이 되지 못하면, 아무리 열심히 전도하고 사회에 참여해도 세상은 하나님의 구속의 실재를 보지 못한다. 복음의 포괄적 성격을 아무리 잘 이해하고, 문화명령과 대위임령의 통합을 아무리 잘 설명해도, 그것이 교회의 삶으로 구현되지 않으면 한낱 이론에 그치고 만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르완다는 기독교 인구가 넘쳐났지만 그 믿음이 요청하는 정체성과 사명이 교회 공동체의 삶 속에 뿌리내리지 못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반면에, 초대교회는 작고 연약했지만 그 존재 자체가 주변 세계에 강력한 증거가 됐다.
그들의 삶이 곧 복음이었고, 그들의 공동체 자체가 하나님 나라의 가시적인 표현이었다. 사도행전이 증거하듯이 초대교회는 가르침과 교제와 떡 떼는 일과 기도에 힘쓰며(행 2:42), 서로 나누는 삶을 살았고(행 2:44~45),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으며(행 2:47),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행 2:47).
교회가 진정으로 하나님이 의도하신 공동체가 됐을 때, 그 존재 자체가 복음의 선포가 되었고, 그 삶 자체가 하나님의 구속의 증거가 된 것이다. 결국 교회가 그런 존재가 '되는 것'은 단순히 이상적인 목표가 아니라 선교적 삶의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교회의 선교적 정체성과 사명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하나님이 의도하신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그 교회는 하나님의 구속을 어떤 원리로 이뤄가는가?
구약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 12:3)고 약속하셨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 태초부터 열방에 복이 되기 위해 복을 받은 존재였다. 출애굽기 19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부르셨다.
제사장이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서듯이,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하나님의 구속적 임재를 매개하는 공동체다. 레위기 19장에서 보면, 하나님의 선택은 윤리적 삶으로 나타나고, 그 윤리적 삶이 곧 선교적 증거가 된다.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 19:2)라고 하신 명령 뒤에 이어지는 구체적인 삶의 규범들 즉 이웃 사랑, 약자 보호, 공정한 재판, 정직한 상거래 등은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신명기 4장에서 모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규례와 법도를 너희에게 가르쳤나니… 너희는 지켜 행하라 이것이 여러 민족 앞에서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신 4:5~6).
열방이 하나님의 백성을 보고 그 지혜와 아름다움에 감탄하여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산 위의 도시'로서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의 의도다.
신약으로 넘어오면, 교회는 이 구약 백성의 정체성과 역할을 이어받되,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성령의 부으심이라는 결정적 사건 이후에 새로운 특징을 갖게 된다. 교회는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면서 아직 완성되지 않은 그 나라의 완성을 기다리는 종말론적 선교적 백성이다.
교회는 입술의 선포뿐 아니라, 삶과 행동으로 하나님 나라의 실재를 드러낸다. 교회는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시작된 새 창조에 동참하는 새로운 인류로서, 옛 세상의 질서와는 다른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구현한다. 또한 교회는 성령의 전으로서, 성령의 능력 안에서 이 모든 사명을 감당한다.
이 모든 정체성의 중심에 예배가 있다. 하나님의 백성은 본질적으로 예배하는 공동체이며, 이 예배가 선교적 삶의 원동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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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주 봉 목사나침반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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