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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병학 목사의 소통하는 교회 - 소통은 곁에 머무는 일이다

작성일 : 2026-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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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곁을 내어줄 때, 사람은 다시 사람답게 선다

요즘 한국에서 뿐 아니라 미주 지역에서도 영화〈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을 바라보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 영화가 건드린 지점은 화려한 권력 서사나 복수의 쾌감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것을 빼앗긴 어린 왕과, 그를 곁에서 맞이한 한 사람이 서로를 통해 인간성을 회복해 가는 과정에 있다. 


왕은 권좌에서 쭟겨 내려온 뒤에야 비로소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처음에는 계산과 현실 감각으로 움직이던 인물 또한, 점차 왕을 이용할 대상이 아니라 지켜야 할 한 사람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 영화의 울림은 바로 여기에 있다.


관객은 강한 왕보다 상실한 왕에게 더 깊이 마음을 내어준다. 높은 자리에 있는 존재보다, 그 자리를 잃고 외로움과 상실감 속에 놓인 존재에게 자신을 겹쳐 본다. 


그것은 오늘을 사는 이들의 내면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애쓰지만, 정작 마음 둘 곳은 잃어버린 채 살아간다. 일터에서 밀려난 사람, 가정에서 말할 자리를 잃은 사람, 공동체 안에서 역할은 남았지만 존재는 잊힌 사람들. 겉으로는 제 자리에 서 있는 듯 보이지만, 속으로는 유배를 경험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곳에서조차 자신을 이용하려는 사람들과 매일 대면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 속 일상의 장면들이 특별한 힘을 가진다. 밥을 함께 먹는 장면, 사소한 말을 주고받는 장면, 서로의 표정을 읽어 가는 장면이 거대한 사건보다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 사람은 거창한 구호로 회복되지 않는다. 누군가와 함께 앉아 있고, 누군가가 내 말을 들어 주고, 내 존재가 부담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때 다시 살아난다. 


존엄은 높은 지위에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곁을 내어줄 때, 사람은 다시 사람답게 선다.


이 지점에서 교회를 돌아보게 된다. 교회는 과연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고 있는가. 아니면 역할과 기능으로만 이해하고 있는가. 직분은 있지만 대화는 없고, 모임은 많지만 마음을 들을 시간은 없고, 함께 예배하지만 서로의 외로움은 지나쳐 버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지는 않은가. 소통하는 교회는 말이 많은 교회가 아니다. 


사람을 기능보다 존재로 먼저 보는 교회다.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기 전에, 지금 어떤 마음으로 서 있는지를 살피는 교회다.


복음은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멀리서 명령만 내리는 왕이 아니었다. 사람들 가운데로 오셨고, 함께 먹고 마셨고, 우는 자들 곁에 머무셨다. 하늘의 영광을 지키는 방식이 아니라 인간의 자리까지 내려오는 방식으로 구원을 이루셨다. 


그러므로 교회의 소통 역시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전달 체계여서는 안 된다. 곁으로 내려오는 동행이어야 한다. 교회가 진정 그리스도를 따른다면,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것은 설득의 기술보다 함께 있음의 태도일 것이다.


특별히 오늘의 시대는 인정받고 싶지만 말하지 못하는 이들을 많이 만들어 낸다. 책임은 무겁고 마음은 고단하지만, 자신의 약함을 드러낼 자리는 좀처럼 허락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쉽게 침묵하고, 더 깊이 홀로 버틴다. 교회는 이런 침묵을 신앙의 미숙함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누군가의 무표정 속에 지친 마음이 있고, 누군가의 과묵함 속에 오래된 상실이 있다. 소통은 말을 잘하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상대의 침묵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신드롬은 결국 우리 시대의 결핍을 비춘다. 사람들은 권력을 갈망해서 이 영화에 반응한 것이 아니다. 관계를 갈망했기 때문에 반응했다. 군림하는 존재보다 함께 살아 주는 존재를 더 절실히 원하기 때문에 이 이야기에 마음을 열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 존중받고 싶은 마음, 누군가와 진실하게 연결되고 싶은 마음이 이 영화의 바닥에 흐르고 있다.


교회가 바로 그 갈망 앞에 서야 한다. 교회는 상처 입은 사람을 다시 사람으로 대해 주는 곳이어야 한다. 잘 말하는 사람보다 잘 들어 주는 사람이 귀한 곳이어야 한다. 누군가의 실패와 침묵 곁에 조용히 머물 수 있는 공동체여야 한다. 


소통하는 교회는 거창한 전략으로 세워지지 않는다.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한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듣고, 한 사람의 곁을 지켜 주는 일에서 시작된다.


영화 속에서 왕은 권좌를 잃은 뒤 사람을 만난다. 어쩌면 교회도 마찬가지인지 모른다. 높아지려는 마음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사람을 볼 수 있다. 사람을 볼 때 비로소 소통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 소통 속에서 공동체는 다시 살아난다. 진짜 왕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산다는 것은, 서로를 다스리는 일이 아니라 서로를 사람답게 세워 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왕과 사는 남자〉가 던진 울림은 바로 그 단순하고도 깊은 진실을 다시 붙들게 만든다.


이것이 부활절을 앞둔 교회가 회복해야 할 마음이다.

  • 김 병 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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