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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병학 목사의 소통하는 교회 - 소통은 숨을 쉴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작성일 : 2026-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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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없는 진리는 사람을 살리지 못해…더 깊은 침묵으로 밀어 넣을 뿐…

며칠 전 한 장면이 오래 남았다. 많은 인기를 누리는 무대 위에 서 있는 사람의 고백이었다.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데, 오히려 행복해 보였고,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였는데, 정작 본인은 “숨이 안 쉬어졌다”고 말한다. 버티고, 견디고, 서 있어야 하는 자리에서 더 이상 숨이 들어오지 않는 느낌이었다고 말한다.


최근 한국 TV 유퀴즈온더블럭에 출연한 남매가수 악뮤(악동뮤지션)의 이야기는 이 시대의 정서를 그대로 드러낸다. 동생 이수현은 긴 슬럼프 속에서 무대 위조차 숨이 막히는 공간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오빠 이찬혁은 그 시간을 버티게 한 방식이 ‘해결’이 아니라 ‘곁에 머무는 것’이었다고 보여준다. 


핵심은 단순하다. 사람은 정답으로 살아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숨 쉴 수 있는 관계가 있어야 다시 살아난다.

그러면 교회에 적용해 볼 때, 교회는 숨 쉬는 공간인가?


이 질문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다. 교회는 과연 숨 쉴 수 있는 곳인가.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여전히 교회 안에서 자신의 상태를 감춘다. 힘들다는 말 대신 괜찮다고 답하고, 무너졌다는 고백 대신 침묵을 선택한다.


이유는 명확하다. 말해도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몇 번이나 칼럼에서 강조했지만, 교회는 종종 너무 빨리 답을 내린다. 누군가의 고통을 들으면 공감보다 해석이 먼저 나온다. 기도해라, 믿음으로 이겨라, 하나님의 뜻이 있다. 분명히 이 말들은 틀리지 않다. 그러나 순서가 틀렸다. 숨이 막힌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설명이 아니라 공기다. 공감 없는 진리는 사람을 살리지 못한다. 오히려 더 깊은 침묵으로 밀어 넣는다.


악뮤의 또 다른 고백은 의미심장하다. 이제는 서로 달라졌기 때문에 매일 대화하지 않으면 함께할 수 없다는 말이다. 관계는 자동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멀어진다.


교회 역시 예외가 아니다. 같은 공간에 앉아 있다고 해서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같은 예배를 드린다고 해서 서로를 이해하는 것도 아니다. 말하지 않으면 오해가 쌓인다. 듣지 않으면 관계는 끊어진다. 결국 사람은 떠난다. 이 지점에서 교회는 근본적인 착각을 내려놓아야 한다. ‘함께 있음’이 ‘연결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들 남매가 방송에 나온 이유 중 하나는 “한 줄을 기록하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남기고 싶다는 욕구다.

여기서 교회는 질문을 받아야 한다. 교회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얼마나 듣고 있는가. 대부분의 공동체는 결과만 공유한다. 회복된 이야기, 정리된 간증, 완성된 결론만 남는다. 그것도 대부분의 결과는 성공과 축복의 내용 뿐이다. 


그러나 실제 삶은 진행 중이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 여전히 흔들리는 믿음, 끝나지 않은 고통이 더 많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들은 교회 안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다. 결국 사람들은 자신의 진짜 이야기를 교회 밖에서 풀어낸다. 그래서 교회는 점점 더 형식적인 공간이 된다.


소통은 단순한 대화 기술이 아니라 삶을 함께 짊어지는 태도라는 사실이다. 또한 사람의 내면 깊은 허기를 함께 나누지 못할 때, 공동체는 표면적인 연결에 머무르게 된다. 결국 남는 것은 ‘함께 있음’이 아니라 ‘혼자 버티는 구조’다.


소통하는 교회는 말을 많이 하는 교회가 아니다. 오히려 말할 수 있는 교회다. 차이는 분명하다.


첫째, 공감이 먼저다. 가르치기 전에 듣고, 판단하기 전에 이해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둘째, 약함이 허용된다. 흔들림을 드러내도 관계가 끊어지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이 입을 연다.

셋째, 의도적인 대화가 있다. 관계는 노력 없이는 유지되지 않는다. 반복적인 질문과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넷째, 과정이 공유된다. 완성된 이야기만이 아니라 진행 중인 삶을 나눌 때 공동체는 현실과 연결된다.

이 네 가지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태도의 문제다.


결국 결론은 하나다. 교회는 숨을 쉴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사람이 자신의 상태를 감추지 않아도 되는 곳, 말하지 못했던 감정을 꺼낼 수 있는 곳, 정답이 없어도 함께 머물 수 있는 곳. 이것이 회복되지 않으면 교회는 ‘버티는 장소’가 된다. 그리고 사람은 버티는 곳을 떠난다.


그러므로 소통은 선택이 아니다. 생존의 문제다.


이것은 거창한 변화가 아니다. 아주 작은 질문 하나에서 시작된다. “요즘, 정말 괜찮으세요” 이 질문을 진심으로 던지고 끝까지 듣는 것. 그 순간, 누군가는 다시 숨을 쉰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교회는 다시 교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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